서울의 봄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79년 10월26일부터 12월14일까지, 즉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전부터 12.12 군사반란 직후까지를 다룬다.
1979년 10월26일 밤, 국무위원 및 정부 고위관계자, 수도권 및 정방 군부대의 지휘 책임자들이 모두 육군본부로 소집된다. 잠시 후 B-2 벙커에서 최한규 국무총리가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하고 일시 묵념을 취한다. 이후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서 비상국무회의를 소집한다. 27일 새벽 4시, 비상국무회의 의결로 제주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엄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 정상호 대장을 임명한다. 정 대장은 계엄법에 의거하여 국군보안사령관인 전두광 소장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해 시해 사건의 조사하도록 한다.
대통령경호실과 중앙정보부가 대통령 및 그 수장들의 공백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이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광은 대한민국의 모든 정보를 독점하게 된다. 각 정부부처의 차관들의 보고를 받기도 하고, 청와대 비밀금고에서 나온 9억 원을 개인적으로 유용하는 등 월권행위를 자행한다. 이에 정 총장은 전군 지휘관 회의에서 군인의 본분을 잊지말 것과 정치와는 거리를 두라는, 하나회를 겨냥한 경고를 날린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전두광은 회의 후 정 대장에게 수경사의 사령관에 제9보병사단장 노태건을 앉힐 것을 제안하지만, '인사권은 참모총장의 고유 권한'이라고 일갈하며서 거절하고, 하나회를 뿌리뽑기로 마음먹게 된다.
전두광은 총장으로부터 모멸감을 느끼고, 회의장소를 떠나려다가 이태신을 복도에서 마주치고 이태신을 자신들의 쪽으로 회유하려 하지만 이태신의 단호한 거절과 하나회에 대한 경고를 듣게 된다.
정 총장은 하나회 숙청의 일환으로 국무총리에게 하나회 핵심인물 전두광, 노태건을 각각 지방 경비사령부와 보병사단으로 보직이동을 건의하여 이들은 좌천시킬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오장관은 하나회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을 실토하면서도, 정 총장의 제안을 그냥 흘려넘기기듯이 허락은 해준다. 그렇지만 여기저기 퍼진 하나회 군인들을 통해 이 소식을 전두광에게 흘러가게 된다. 정총장의 계획을 알게된 전두광은 노태건 소장을 연희동 자택에 불러 정총장을 10.26사건을 걸어서 계엄사령관직에서 끌어내리자고 제안한다. 처음에는 노 소장은 당황하지만 전두광의 끈질긴 설득으로 마음을 연다.
정총장은 이태신 소장을 불러 수도경비사령관직을 제안한다. 이태신은 정규 육사가 아닌 갑종장교 출신으로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우직한 군인이었다. 정총장의 간청으로 수경사 사령관직을 수락한다. 취임 즉시 하나회 통제가 없는 부대를 파악하나 야포병단과 방공포병단만 하나회 소속이 아닌 것을 파악한다.
전두광은 연희동 자택에서 하나회 회원과 이를 후원하는 선배장성을 모아 자신의 계엄사령관 체포계획에 함께 할 것을 종용하면 대통령의 재가로 성공할 수 있다고 설득한다. 이들은 새 내각이 들어서기 전 날인 12월12일을 거사 날로 정하고, 수경사 이태신 소장, 육군특수전사령관 공수혁 소장, 육군 헌병감 김준엽 준장이 힘을 못 쓰도록 거사 당일에는 모아두기로 한다.
12월12일 하나회 일당은 경복궁에 있는 제30경비단에 집결한다. 이들은 최한규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국무총리 공관에서 대통령의 재가를 받는 동시에, 한남동 육군참모총장공관에서 정상호 총장을 납치하는 계획을 세운다.
이태신과 공수혁 소장, 김준엽 준장이 도착한 장소는 연희동의 고급 요청이었다. 전두광이 오직 않았다는 원경의 대답에 돌아가려는 이태신 소장을 때마침 도착한 공수혁 소장의 말에 그냥 머물기로 한다. 같은 시각 총리공관에 최대통려으 마주한 전두광은 계엄사령관을 즉시 수사할 것을 요청하며, 총장 구속 재가를 요청하나, 원칙주의자인 최 대통령은 국방장관과 함께 정식으로 절차를 거치자는 말로 재가를 끝내 거부한다.
보안사 인원들은 30경비단 병력을 은밀히 동원해 총장 공관에서 정총장과 만난다. 처음 정 총장은 전두광이 부하들을 보내 줄 알았지만 이들이 녹음 가능한 곳으로 모시겠다는 말에 역정을 내면서 부하들에게 대통령과 통화를 시도하려 한다. 이에 보안사 요원들은 정총장의 부관들을 총으로 사살하고 총장 납치를 감행한다.
보안사 일당은 정총장을 무력으로 납치하는데 성공하는데, 총 소리에 놀란 국방장관은 가족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도망가버린다.
연희동에서 전두광을 기다리던 이태신은 그가 올 낌새가 안 보이고, 원대령마저 사라지는 걸 의아해하는 중에 총장 공관에서 총격전이 발생했고, 정 총장이 납치됐다는 보고를 듣고 세 장군들은 자신들의 부대로 서둘러 돌아간다.
그 사이 육군본부로 돌아간 김 준장이 대통령의 재가를 못 받고 물러나는 전두광의 위치를 파악하고 총리공관 정문에 붙잡아 두었지만, 육군참모차장 민성배가 즉각적인 지시를 못내려 전두광을 무사히 총리 공관을 벗어나 30경비단에 복귀한다.
반란군들은 대통령의 재가를 받지 못한 거에 절망에 빠지지만 전두광을 해결될 수 있다며 자신만만하게 행동한다.
이태신 소장이 30경비단에 전화를 걸어 총장님을 다시 육본으로 모실 것, 30경비단에 있는 반란 세력은 원대 복귀할 것, 직속 부하인 장민기 대령, 진영도 대령은 수경사령부로 올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들이 오히려 이태신을 회유하려고 하여 이태신은 "니들 거기서 꼼짝 말고 그대로 있어. 내가 탱크 몰고 밀고 들어가서 니들 대가리를 뭉개버릴 테니까! "라고 호통치며 반란 진압을 선언한다. 이에 반란군들은 겁에 질려 전두광에게 가만히 있을 거냐고 항변하며 역정을 내기 시작하며
잠시 반란군 내에도 이상 기류가 감지되나, 노태건의 반란군들에게 "열차가 앞만 보고 달리는데, 여기서 뛰어내릴 사람 있습니까?"라고 말하며 9사단의 2개 연대를 출동시키겠다고 밝힌다. 이에 반란군 측의 분열모습은 다시 사라지고 결의를 다지게 된다.
2공수여단이 서울로 출동하고, 육본의 장성들은 놀라 2공수 참모장에게 연락을 넣지만 무시한다. 이태신은 3군사령부에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의 출동을 부탁을 하지만,,,이동속도가 느려서, 2공수의 서울 진입이 기정사실인 상황이었다. 이에 수경사 관할 모든 한강 다리를 봉쇄하는 지시를 내리고, 모든 도로가 꽉 막혀 2공수는 행주대교로 이동을 돌리고, 이태신은 다시 행주대교 관할의 30사단장에 연락을 걸어 행주대교 봉쇄의 답을 얻어낸다. 하지만 전군 통신망을 장악한 반란군은 30사단장을 회유하고, 통신 감청을 계속 하겠다고 협박을 가한다. 30사단장은 실제 반란군의 협박이 허풍이 아니고, 30사단과 9사단, 2공수여단과의 충돌을 우려해 행주대교 통제를 하지 않았다. 이태신은 행주대교 앞에서 직접 바리케이드를 치고, 달려오는 2공수 차량에 홀로 막아서는 기백을 선보인다. 또한 2공수에게 즉각 철수 명령이 무전으로 전달되고, 공수혁 소장의 원대 복귀 명령이 전달되면서 2공수여단의 원대복귀를 성공시킨다.
반란군은 모든 학연, 지연, 혈연을 총동원하여 인근 부대들의 회유를 시도한다.
반란군과 이태신의 진압군과의 서로간의 일촉즉발의 상황은 계속되지만, 모든 상황은 반란군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모든 부대가 반란군에 협조 태도를 보이면서, 이태신 소장과 수경사는 마지막 진압군이 되어 가용할 수 있는 수경사 전병력을 연병장에 집합시켜서 연병장에서 최후의 연설을 하고 104명의 장병과 전차4대, 장갑차4대로 광화문에 들어선다. 이태신은 수경사 야전포병단에 30경비단을 조준하게 하고, 반란군에 투항을 하라는 최후 통첩을 날린다. 그러나 2공수에게 끌려온 국방장관이 반란군의 마이크로 야포단 사격중지를 명령하고, 시민들이 놀라 길거리에 나오면서 반란군의 인간 방패가 되는 상황에 직면하자, 야포단도 포격 명령을 이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이태신도 더 이상 부대원들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어, 부대 복귀를 명령하고 혈혈 단신으로 반란 진영을 철조망을 뚫고 다가간다. 이태신은 철조망 너머의 전두광을 향애 "넌 대한민국 군인으로도 ...인간으로도...자격이 없어!" 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으며 체포된다. 그렇게 또한번 5.16 군사 정변이후 반란군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반란군으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내는 데 성공하고, 13일아침부터 파티를 성대하게 벌인다. 동시에 조사실에 끌려가서 고문당하고 얻어맞는 이태신 소장, 김준엽 준장, 공수혁 소장, 정상호 대장의 모습이 교차되어 비춰진다.
다시 다음날 12월14일 전두광의 안내에 의해 반란군 지휘부는 단체 사진을 찍는다. 한명 한명 클로즈업 되면 이력들이 명시되고, 신군부가 자행한 행적을 자막으로 띄우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